한국 상표법은 먼저 쓴 사람이 아니라 먼저 출원한 사람 편이다

여러분은 회사 이름이나 제품 이름을 어떤 순서로 지었는가? 몇 주를 고민해 이름을 정하고 도메인을 사고 인스타그램 계정을 열고 간판을 달고 사업자등록을 낸다. 로고에 100만 원을 쓰고 명함을 500장 찍는다. 그리고 몇 년 후 매출이 좀 늘어나는 듯 하자 내용증명 한 통을 받는다. 귀사가 사용하는 명칭이 당사 등록상표를 침해한다는 내용이다. 억울하다. 사업자등록증에 버젓이 적힌 이름이고 내가 먼저 썼는데 왜 침해냐고 묻는다. 답은 차갑다. 법인설립등기나 사업자등록만으로는 상표권이 생기지 않는다. 상호등기는 같은 지역에서 같은 업종이 같은 상호를 또 등기하지 못하게 막는 제도일 뿐이다. 도메인도 마찬가지다. 선착순 배분일 뿐 상표권과 아무 상관이 없다. 대한민국 상표법은 선출원주의를 원칙으로 한다. 먼저 사용한 사람이 아니라 지식재산처에 먼저 출원서를 낸 사람이 권리를 가진다. 내가 1년을 써도 남이 어제 출원했으면 어제가 이긴다. 6개월 뒤 이름을 빼앗기는 구조는 여기서 나온다.
예외가 없지는 않다. 상표법 제99조는 선사용권을 인정한다. 다만 요건이 만만치 않다. 상대가 출원한 날보다 먼저 사용했어야 하고 한두 번이 아니라 실제 영업에서 계속 사용했어야 한다. 결정적으로 남 브랜드에 편승할 목적이 없었어야 한다. 게다가 상대 출원 시점에 국내 수요자가 그 이름을 내 사업 표시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까지 입증해야 한다. 입증 책임은 전부 내 몫이다. 창업 1년 차가 들고 갈 증거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오해가 하나 더 있다. 상표권은 지역이 아니라 상품류를 기준으로 작동한다. 서울에서 등록한 상표는 제주에 있는 같은 업종 사업자에게도 똑같이 사용 금지 효력을 미친다. 옆 동네가 아니니 괜찮다는 생각은 통하지 않는다.
그러면 출원 비용은 얼마일까. 지식재산처 수수료 기준으로 전자출원 출원료는 1상품류당 5만 원대에서 6만 원대다. 등록이 결정되면 설정등록료가 상품류마다 20만 원 정도 추가된다. 로고 제작비 100만 원과 비교해 보면 답이 명확하다. 창업가는 이름을 예쁘게 만드는 데는 돈을 쓰면서 그 이름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는 6만 원을 아낀다.

시간도 변수다. 상표 심사는 보통 14개월에서 18개월이 걸린다. 오늘 출원해도 등록증은 내후년에 나온다. 그래서 출원일이 중요하다. 권리 순서는 등록일이 아니라 출원일로 갈린다. 서두르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라는 뜻이다. 급하면 우선심사를 신청한다. 상품류당 16만 원을 더 내면 심사 기간이 2~3개월로 줄어든다. 이미 상표를 사용 중인 사업자는 신청 대상에 들어간다. 지금은 이름을 정하자마자 인스타그램, 네이버, 유튜브에 노출되는 시대다. 브랜드가 알려지는 속도만 빨라진 게 아니라 남 눈에 띄는 속도도 같이 빨라졌다. 매출이 오르기 시작한 작은 브랜드 이름을 먼저 출원해 두고 되파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다. 마케팅을 잘할수록 표적이 된다는 뜻이다. 출원 없이 브랜드를 키우는 일은 남의 통장에 저축하는 행동과 다르지 않다.
당장 할 일은 이렇다. 먼저 키프리스(kipris.or.kr)에 들어가 쓰려는 이름을 검색한다. 무료다. 똑같은 이름뿐 아니라 발음과 뜻이 비슷한 이름까지 확인한다. 다음으로 상품류를 정한다. 같은 이름이라도 업종이 다르면 등록이 가능하므로 내가 파는 것과 앞으로 팔 것을 함께 고른다. 콘텐츠 사업자라면 제35류나 제41류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다음이 순서 문제다. 이름을 확정하면 로고 제작보다 출원을 먼저 한다. 문자상표부터 걸어 두고 로고는 나중에 따로 낸다. 이미 쓰고 있는 이름이라면 오늘 출원하고 우선심사를 함께 신청한다. 마지막으로 사용 증거를 모은다. 날짜가 찍힌 계약서, 세금계산서, 광고물, 포장지 사진을 폴더 하나에 쌓아 둔다. 분쟁이 생기면 그 폴더가 유일한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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