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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오늘 한 꼭지

원가에 마진 붙이는 순간, 가격은 무너진다

가격은 내가 쓴 돈이 아니라 고객이 얻는 돈에서 나온다

창업가 대부분이 가격을 정하는 장면은 비슷하다. 재료비와 인건비를 더하고, 여기에 30%쯤 마진을 얹는다. 계산기를 두드리는 시간은 10분을 넘기지 않는다. 그렇게 정한 가격을 3년 동안 그대로 쓴다. 원가가산 방식은 계산이 쉽고 설명하기도 편하다. 문제는 이 방식이 원가가 오르는 순간 창업가를 벼랑으로 민다는 데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2026년 3월 발표한 「2024년 기준 소상공인실태조사」를 보면, 소상공인이 꼽은 경영 애로 1위는 경쟁 심화(61.0%), 2위는 원재료비(49.6%)였다. 원가는 오르고 경쟁은 거세진다. 가격을 원가에 묶어둔 창업가는 두 압력을 동시에 맞는 순간 선택지를 잃는다. 올리면 고객이 떠나고, 그대로 두면 마진이 사라진다. 한번 낮게 부른 가격은 좀처럼 다시 올리지 못한다. 첫 거래에서 100만 원을 부른 창업가는 다음 거래에서 150만 원을 부르기 어렵다. 고객은 인상 근거를 묻는데, 창업가는 답이 없다. 근거를 원가에서만 찾았기 때문이다.

원가가산 가격에는 결함이 세 개 있다. 첫째, 고객은 창업가 원가에 관심이 없다. 자기가 얻는 결과에만 돈을 낸다. 둘째, 원가는 창업가가 서툴수록 높아진다. 초보일수록 같은 결과를 내는 데 시간을 두 배로 쓴다. 서툰 사람이 더 비싸게 파는 구조다. 셋째, 원가는 가격 상한선을 스스로 깎는다. 고객이 500만 원을 낼 의향이 있어도, 원가가 100만 원이면 창업가는 130만 원을 부른다. 나머지 370만 원은 그냥 사라진다. 가치 기반 가격 책정은 출발점을 바꾼다. "얼마가 들었나"가 아니라 "고객이 얼마를 얻나"에서 시작한다. 마케팅 자료 한 세트를 만들어 고객사 문의가 월 열 건 늘고, 그중 두 건이 계약을 맺고, 계약 한 건이 300만 원이라면, 그 자료가 만드는 금액은 월 600만 원이다. 이 숫자를 먼저 계산한 뒤 가격을 정한다. 원가는 가격 기준이 아니라 넘지 말아야 할 하한선으로만 쓴다. 지불 의향은 감으로 알 수 없다. 네덜란드 경제학자 판 베스텐도르프가 1976년 만든 가격 민감도 측정(PSM)은 질문 네 개로 범위를 뽑는다. 얼마부터 비싸다고 느끼는지, 얼마부터 아예 사지 않을 만큼 비싼지, 얼마면 싸다고 느끼는지, 얼마부터 품질을 의심할 만큼 싼지 묻는다. 고객 스무 명에게만 물어도 수용 가격 범위가 드러난다.

지금 가격을 다시 봐야 하는 이유는 시장 변화 두 가지가 겹쳤기 때문이다. 하나는 원가 상승과 가격 통제 압력이다. 2025년 정부는 외식업 가격 인상은 물론 용량 조정까지 감시 대상에 올렸다. 원가 부담을 가격에 반영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다른 하나는 AI다. 콘텐츠, 디자인, 개발, 번역처럼 작업 시간이 곧 원가였던 업종에서 AI가 제작 시간을 절반으로 줄인다. 원가가산 방식을 고수하면 결과는 뻔하다. 원가가 반으로 줄었으니 가격도 반으로 내려간다. 실력이 늘고 도구가 발전할수록 스스로 가격을 깎는 셈이다. 맥킨지가 대기업 손익 구조를 분석한 결과, 판매량이 그대로라는 가정 아래 가격을 1% 올리면 영업이익이 평균 8~11% 늘어난다. 판매량 1% 증가나 변동비 1% 절감보다 효과가 크다. 다만 이 숫자는 실험 결과가 아니라 손익 구조에서 나온 계산이다. 판매량이 줄지 않는다는 전제가 붙는다. 창업가가 가장 적게 고민하는 항목이 이익을 가장 크게 움직인다.

당장 할 일에는 순서가 있다. 먼저 지금 파는 상품 하나를 골라, 그 상품이 고객에게 만들어 주는 금액을 숫자로 적어 본다. 매출 증가든 아낀 시간이든 상관없다. 숫자로 못 적으면 가치 기반 가격을 매길 근거가 없다는 뜻이므로, 그 근거부터 만들어야 한다. 다음으로 기존 고객 스무 명에게 PSM 네 문항을 묻는다. 통화로 5분이면 끝난다. 여기서 나온 범위와 현재 가격을 나란히 놓으면 그동안 얼마나 싸게 팔았는지 바로 보인다. 인상은 신규 고객부터 적용한다. 기존 고객에게는 3개월 유예를 주고 미리 알린다. 마지막으로 단일 가격을 버리고 세 단계로 나눈다. 가장 비싼 안을 먼저 보여주면 중간 안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가격 인상은 배짱이 아니라 근거를 모으는 작업이다. 오늘 근거부터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