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블로그/오늘 한 꼭지

굿즈는 기념품이 아니라 미디어다

개인 사업자와 스타트업이 재고 없이 브랜드를 남기는 방법

스티커 1000장을 찍었다가 800장을 창고에 남긴 대표님을 여럿 만났다. 굿즈 제작 단가는 수량이 늘수록 떨어진다. 그래서 대부분 처음부터 크게 만든다. 그 판단이 현금을 태운다.

지난해 국내에서 열린 팝업스토어가 3000개를 넘었다. 방문객은 두 손 가득 굿즈를 받아 가지만, 몇 달 뒤 책상에 살아남는 물건은 두세 개뿐이다. 부채, 클리커, 말랑이처럼 손이 자주 가는 물건만 버틴다. 질문을 바꿔야 한다. 무엇을 만들까가 아니라, 고객 책상에서 90일 뒤에도 살아남을 물건이 무엇인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하나 더 짚고 간다. 굿즈는 팬이 있는 브랜드를 증폭한다. 팬이 없는 브랜드를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굿즈를 브랜드 자산으로 바꾸는 조건은 세 가지다. 첫째, 매일 쓰는 물건을 고른다. 예쁘기만 한 물건은 한 번 감탄받고 사라진다. 손이 하루 한 번 닿는 물건만 브랜드를 반복해서 노출한다. 둘째, 로고 대신 세계관을 담는다. 롯데웰푸드는 꼬깔콘, 몽쉘 같은 자사 IP를 수공예 작가들에게 열어 주었다. 작가들은 꼬깔콘 키링과 카스타드 향수를 만들어 냈다. 브랜드 혼자서는 나오지 않을 결과물이다. 개인 사업자도 같은 구조를 쓴다. 내 캐릭터나 로고 사용권을 지역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열고 제작비 대신 판매 로열티를 지급한다. 초기 현금 부담이 거의 사라진다. 셋째, 재고를 지운다. 마플샵 같은 주문제작(POD) 플랫폼은 제작과 배송, CS까지 대신 처리한다. 판매자는 디자인만 올린다. 마플코퍼레이션은 스마트팩토리와 협력 공장 60여 곳을 묶어 다품종 소량 생산 체계를 갖췄다. 꼭 이런 업체 말고도 지역에 소량 굿즈 제작이 가능한 업체들은 무궁무진하다. 이제 한 장부터 만든다. 100개를 미리 찍을 이유가 사라졌다.

시장 흐름도 작은 브랜드에게 유리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캐릭터산업백서는 2023년 국내 캐릭터 산업 매출을 약 11조 5000억 원으로 집계했다(정책브리핑, 2025). 규모보다 중요한 지점은 취향 변화다. 2026년 굿즈 키워드로 감정 안정, 로컬 경험, 개인 맞춤, 지속가능성 네 가지를 꼽는다. 대량 생산은 개인 맞춤과 충돌한다. 전국 브랜드는 특정 골목 이야기를 담지 못한다. 동네 빵집이 만든 '이 골목에서만 파는 자석'을 대기업이 이길 방법은 없다.

첫 제작은 100개 이하로 묶고, 주문제작 플랫폼이나 크라우드펀딩 선주문으로 수요부터 확인한다. 팔리지 않은 디자인은 재고 대신 데이터로 남는다. 디자인을 잡을 때는 로고를 키우지 말고 고객이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문장 하나를 넣는다. 로고는 광고에 그치지만 문장은 대화를 만든다. 책상 위인지 가방 겉인지 냉장고 문인지, 놓일 자리도 미리 정한다. 뒷면에는 QR 코드를 넣어 재방문 경로를 심는다. 그리고 90일 뒤 성과를 센다. 판매량이 아니라 고객이 스스로 올린 사진 수를 센다. 그 숫자가 브랜드 기억을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