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주 계약서 다섯 줄이 1년 뒤 분쟁을 막는다

우리가 외주를 맡기는 장면은 대개 이렇다. 아는 사람을 소개받고 카톡을 통해서 범위를 정한다. 견적서 한 장을 받고 입금한다. 계약서는 없다. 있어도 상대가 준 양식에 도장만 찍는다. 그리고 1년 뒤 문제가 터진다. 외주 제작한 로고 색을 바꾸려는데 디자이너가 안 된다고 한다. 영상을 짧게 잘라 광고로 쓰려는데 상대가 추가 비용을 달라고 한다. 창업가는 황당하다. 돈을 다 줬는데 왜 내 마음대로 못 쓰냐고 묻는다. 여기서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대금을 지급했다는 사정만으로 저작권이 발주자에게 넘어오지 않는다.
직원이 업무로 만든 결과물은 회사에 귀속하지만, 외주는 직원이 아니다. 저작권을 넘겨받으려면 계약서에 양도한다고 적어야 한다. 적지 않으면 권리는 만든 사람에게 그대로 남는다. 발주자가 돈을 냈고 기획도 발주자가 했고 수정 지시도 발주자가 내렸어도 결과는 같다. 손으로 창작한 사람이 저작자다. 창업가가 매번 손해 보는 첫 번째 지점이 바로 이 한 줄 누락이다. 그리고 이 누락은 1년 뒤 그 결과물이 잘될 때 정확히 터진다.
양도한다고 적으면 끝날까. 아니다. 저작권법 제45조 제2항은 저작재산권 전부를 양도해도 특약이 없으면 2차적저작물작성권은 넘어가지 않은 것으로 추정한다. 2차적저작물작성권은 원본을 번역, 변형, 각색, 영상 제작 같은 방식으로 고쳐 쓸 권리다. 로고를 사 왔어도 색을 바꾸거나 캐릭터로 변형할 권리는 디자이너에게 남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계약서에는 '2차적저작물작성권 포함'이라는 문구를 반드시 넣어야 한다.
다만 컴퓨터 프로그램은 정반대다. 특약이 없으면 2차적저작물작성권까지 함께 넘어간 것으로 추정한다. 개발 외주와 디자인 외주는 기본값이 다르다. 저작인격권도 알아 둬야 한다. 성명표시권과 동일성유지권 같은 저작인격권은 창작자에게 붙어 있어서 아예 양도할 수 없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양도 대신 불행사 합의를 적는다. 돈 문제도 조항이다. 하도급법이 적용되는 거래라면, 발주자는 목적물을 받은 날부터 60일 이내에 대금을 지급해야 한다. 용역은 수행을 완료한 날이 기준이다. 이 규정은 강행규정이라 당사자가 더 늦게 주기로 합의해도 효력이 없다. 60일을 넘기면 초과 기간에 연 15.5% 지연이자가 붙는다. 다만 하도급법은 거래 당사자 규모에 따라 적용 여부가 갈리므로 내 거래가 대상인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

우리 같은 소상공인들이 이 문제에서 유독 자주 당하는 이유가 있다. 줄 때는 발주자고 받을 때는 수급자다. 대기업에서 일을 받을 때는 상대 계약서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프리랜서에게 맡길 때는 계약서를 아예 안 쓴다. 양쪽에서 동시에 진다. 여기에 변수가 하나 더 붙었다. AI다. 외주로 받은 디자인이나 사진을 회사가 AI 학습 자료로 넣거나 AI로 변형해 다른 소재를 만드는 일이 흔해졌다. 이 사용은 2차적저작물작성권과 바로 맞닿는다. 반대 방향도 문제다. 외주 업체가 AI로 만든 결과물을 납품했는데 발주자가 그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있다. 생성물 권리 관계는 아직 정리가 끝나지 않은 영역이라 나중에 분쟁이 생기면 책임 소재부터 흐려진다. 계약서에 AI 사용 여부와 범위를 적는 조항이 이제 필요하다는 뜻이다. 1년 전 표준 양식에는 없던 줄이다.
당장 할 일은 이렇다. 계약서를 길게 쓸 필요는 없다. 한 장짜리 발주서에도 다섯 줄만 넣으면 된다. 첫째, 산출물 목록과 원본 파일 인도 여부. 완성본만 받고 작업 원본을 못 받으면 수정할 때마다 그 업체를 다시 불러야 한다. 둘째, 저작재산권 양도 범위와 2차적저작물작성권 포함 여부. 셋째, 수정 횟수와 그 이후 추가 비용 단가. 넷째, 검수 기한과 승인 간주 조항이다. 발주자가 기한 안에 의견을 주지 않으면 승인한 것으로 본다고 적으면 끝없는 수정 요구가 멈춘다. 다섯째, 대금 지급일과 지연이자다. 여기에 폰트와 이미지 라이선스 책임을 누가 지는지 한 줄 더 넣으면 좋다. 무료 폰트인 줄 알았던 서체 하나가 내용증명으로 돌아오는 일이 실제로 있다. 양식이 막막하면 문화체육관광부가 배포하는 콘텐츠 분야 표준계약서부터 받아 쓰면 된다.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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