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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플문

마징가Z를 보던 꼬마, 대전북페어에 서다

지난 10월 25일 일요일, 대전엑스포기념관 2층에서 열린 2026 대전북페어에서 북콘서트를 진행했습니다.
'책으로 피어나는 과학도시 대전'이라는 문구가 참 마음에 들었는데요. 그 자리에 쟁쟁한 분들 사이에서 초청 강연자로 서게 되어 진심 영광이었습니다.

제 강연 주제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던 아이, 과학을 쓰는 작가가 되다'였습니다. 과학, 인공지능, 그리고 꿈 이야기를 약 1시간 동안 나눴어요.

어릴 때 꿈은 무엇이었나요?

첫 질문은 이거였습니다. "어릴 때, 되고 싶었던 것이 있었나요?"
저의 첫 번째 영웅은 만화 속 마징가Z와 카부토 박사였습니다. 광자력으로 움직이는 초합금Z 로봇을 만든 박사님이요. 그때는 정말 과학자가 되고 싶었죠.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주변 환경이 발목을 잡았고, 지금부터 아무리 열심히 해도 따라가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컸습니다. 그래도 만화책과 영화는 정말 열심히 봤습니다. 그러다 궁금해졌죠. "이 안에 담긴 과학 이야기를 일반 대중에게 소개하면 어떨까?" 좋아하던 것이 길이 된 셈입니다. 2005년 대덕넷에서 시작해 동아사이언스, 시사저널을 거치며 글쓰기를 배웠고, 좋은 기회로 과학동화책까지 쓰게 됐습니다.

그날 가장 강조한 말은 이거였어요.
"저는 제가 책에 쓴 것 이상은 모릅니다. 그래도 아는 만큼은 재미있게 풀어서 전하고 싶었습니다."
전문가만큼 지식이 많지는 않아도, 이야기로는 전할 수 있으니까요.

영화 속 AI의 네 얼굴

"챗GPT 같은 AI, 써 보셨나요?" 하고 질문을 던지며 AI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요즘은 정말 당연한 질문이 됐죠.)
영화 속 AI는 크게 네 가지 얼굴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 조력자: 아이언맨의 자비스
  • 친구: <그녀>, <A.I.>, <바이센테니얼 맨>
  • 스승: <나의 마더>의 마더
  • 적: <어벤져스>의 울트론

우리가 AI를 두려워하는 건 결국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에 쓴 것처럼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죠. 모르는 존재를 하나하나 배우고 알아가며 이겨내는 것, 그게 인간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답 없는 두 가지 질문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쓴 『어린이를 위한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 이야기』 속 '지수와 안나' 이야기에서 출발했어요. 엄마의 목소리를 가진 가사 도우미 로봇 안나가 "슈퍼 파워로 오늘도 홈런!" 하고 말하자 지수가 멈칫하는 장면입니다.
여기에 MBC 휴먼다큐 <너를 만났다>의 사례, 세상을 떠난 딸을 VR로 다시 만난 어머니 이야기를 함께 보여드렸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질문을 드렸습니다.

떠난 가족이나 반려동물을 AI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만나시겠습니까? 그것이 남은 사람에게 좋은 일일까요?

그렇다고 보는 이유는 작별 인사를 나눌 마지막 기회가 되고, 그리움을 달래고 추억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니라고 보는 이유는 이별을 받아들이는 시간이 늦어지고, 고인의 존엄성을 침해할 수 있으며, AI의 말을 진짜로 믿고 의존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요.
(참고로 이 정리는 챗GPT에게 부탁해서 얻은 내용입니다. 어느 쪽이 옳다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영화 <나의 마더>와 <어벤져스>의 울트론에서 가져왔습니다. 마더는 인류의 윤리 문제를 판단해 아이를 직접 교육하고, 울트론은 인류를 위협이라고 판단합니다. 둘의 공통점은 AI가 스스로 '옳다'고 판단했다는 점이죠.

AI가 옳다고 판단한 것을 우리는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요?

이번에도 정답은 말씀드리지 않고 세 가지 질문만 던졌습니다.

  1. AI는 무엇을 근거로 옳다고 판단했을까?
  2. 그 근거를 사람이 들여다볼 수 있을까?
  3. 그 판단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이 질문들은 손을 들어 답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각자 속으로 생각해 보시거나, 집에 가서 부모님과 함께 토론해 보시라고 전했어요. 정답이 없는 질문이니까요.

청중 반응

다행히 대체로 흥미 있게 들어 주셨습니다. 사진으로 봐도 모두 슬라이드와 이야기에 집중해 주셨더라고요. 그 모습에 힘이 났습니다.
강연이 끝난 뒤에는 몇몇 분이 사인을 받으러 와 주셨습니다. 책에 사인을 해 드리는 건 몇 번을 해도 쑥스럽고 기분 좋은 일이네요. ^^
특히 기억에 남는 건 과학자가 꿈이라는 어린 친구였습니다. 마징가Z를 보며 과학자를 꿈꾸던 어릴 적 제 모습이 겹쳐 보였어요. 그 꿈, 꼭 이루길 응원합니다.

다시, 카부토 박사

마지막에는 처음으로 돌아갔습니다. 카부토 박사는 발명품으로 로봇을 만든 사람이었죠.
저는 로봇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로봇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됐습니다.
꿈이 모습을 바꿔서 이뤄진 셈입니다. 하하하.

(마지막 슬라이드 '다시, 카부토 박사'. 마징가Z 만화 속 장면을 함께 띄웠습니다.)

함께 고민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그날 나눈 질문들, 집에 가서도 한 번씩 떠올려 보셨으면 좋겠네요.
다음 행사에서 또 뵙겠습니다. ^^*